디지털치매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책 ‘집중력의 탄생’

2011. 9. 28. 14:3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사례1)
“이상하게 전 모니터상에서는 글이 잘 안 읽혀요. 꼭 종이에 출력해서 봐야 해요.”
PC통신 ‘나우누리’ 세대인 필자보다 한참 어린, 그러니까 IT 전문가들이 ‘인터넷 세대’라고 정의하는 연령대의 후배가 수십 페이지의 논문 PDF 파일을 출력하며 던진 말입니다.
무언가를 차근차근 읽고 싶을 때, 혹은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더라도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 반드시 ‘종이’에 출력해서 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종이 위의 글은 왜 더 잘 읽히는 걸까요?

사례2) 
제 절친은 지난 달 요가 레슨을 끊어놓고도 두 번밖에 가지 못한 이유가 ‘집중력’때문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강사가 “명상을 하라”고 하면 1분도 안 되어 잡생각이 들고 도저히 집중이 안돼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사실 휴대폰이 계속 신경쓰이더라구. 그리고 나이 들면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가? 요즘에 책 읽을 때 한 장을 못 넘어가. 바로 딴 생각이 든다.”
정말 휴대폰이 그녀의 집중력을 빼앗아 가버린 걸까요?



위의 사례는 집중력과 관련된 경험담을 생각하다 떠오른 것입니다. 
집.중.력.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전에 비해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해졌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습니다. 필자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한 가지 생각을 붙들고 있으려 해도, 한 가지 일을 완성하기도 전에 뇌의 한 구석에서 날뛰는 생각과 우리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제어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어쩌다 우리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을까요.

<집중력의 탄생>은 ‘집중력’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집중력’에 관한 책입니다. 집중력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다는, 첨단 기술의 세계에 사는 현대인들의 집중력이 어떻게 분산되고 있는지(distracted)를 다방면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들죠.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해서인지 전 한 달 넘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Yes24>


“현재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웹사이트는 5,000만개, 출간된 책은 180만권, 운영 중인 블로그는 7,500만 개에 달하며, 그 외에도 갖가지 정보의 눈보라가 우리를 덮친다. 그런데도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찾아 구글 검색이나 야후 헤드라인을 뒤진다. 다른 업무를 손에 잡은 채로 컴퓨터 화면 속 정보들을 황급히 집어삼킨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 그리고 메신저나 홈페이지 같은 그런 접촉 순간을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나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약속을 몇 번이나 취소했다 다시 잡는 건 다반사고, 정작 만난 순간에도 쉴새 없이 메시지를 보내거나 통화를 하며 정신이 없다. 우리의 새로운 첨단 기술이 한창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고 과학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이때, 우리는 한편으로 사회적 유대가 얕아지고, 지식이 파편화되며, 직접적 감각에서 멀어지는 문화를 양산해내고 있다. 이 새로운 세상에서는 뭔가 아쉽다. 다름 아닌 집중력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p.12)”

저자는 새로운 첨단 기술이 발달하며 불러온 멀티태스킹에 우리의 집중력이 ‘희생’당했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각종 도구와 장치들이 주는 이점과, 문화발전을 이루는 초석이고 우리의 행복을 이끄는 핵심적인 열쇠인 ‘집중력’을 맞바꾸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현재의 방식대로 살다 보면 깊이 있는 집중력을 한결같이 발휘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집중력의 탄생>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큰 틀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은 인간의 집중하고 사색하는 능력을 점차 떨어뜨린다”고 지적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파편화된 글을 읽다보니 호흡이 긴 장문의 글, 어려운 글을 읽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죠. 

매기 잭슨 또한 ‘인터넷 시대에 변화하는 텍스트와 깊이 읽기’의 장에서 집중력 실종의 시대에 어떤 식으로 읽을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무언가를 읽는 것은 이 세상을 인식하고 거기서 의미를 끌어내는 능력의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텍스트 자체를 넘어선 읽기의 문맥을 강조합니다. 언제, 어디서 읽으며, 어떤 동기와 방법을 가지고 읽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읽기의 초석이 되는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제대로 ‘읽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식의 읽기를 훈련해야 할지 고민해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일침을 가합니다. “이것은 컴퓨터로는 아직 어림도 없는 일이다”

웹상에서 링크를 따라가며 여러 텍스트를 이리 저리 누비며 글읽기를 해도, 정작 브라우저를 닫고 나면 머리 속에 별로 남은 것이 없는 경우. 애초에 인터넷에 접속해 하고자 했던 ‘목적’은 잊어버린 채 인터넷 공간을 부유했던 일. 한번쯤은 전부 경험해보지 않으셨나요?

책 후반부에 가면 집중력을 기르는 비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들을 소개합니다. 이를테면 불교의 명상법 같은 것들입니다. 다시 글 초반부의 사례 1로 돌아가면, 우리가 중요한 글을 읽을 때 종이에 출력해서 읽는 이유는 멀티태스킹의 요소를 차단하고, 온전히 종이 위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훑어보기가 아닌, 집중해서 읽기 위해 ‘종이’라는 도구를 다시 꺼내든 것이죠.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휴대폰이 막 대중화되던 시절, 배우 한석규가 나오는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히트친 카피가 있습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김영하는 “이제 어디로 떠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떠나느냐가 휴가의 질을 결정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3박 4일간의 휴가 동안 모든 전자기기를 집에 놓고 다녀와서 “바람이 불어 풀이 눕는 소리까지 들리는 고요한 방에서 생각했다”고 고백했죠. 

우리도 의식적으로 잠시 각종 기기들을 끄고, 온전히 읽을 거리에 집중해보면 어떨까요. 책이 어렵다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종이신문으로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커다란 지면을 펼치고 그 세상으로 빠지는 순간, 잃어버렸던 집중력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