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장인의 첫 질문 "자네, 신문은 보나?"

2012. 8. 20. 13:15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자네, 신문은 보나?”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였다. ‘티브이도 있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도 있는데 요즘 누가 신문을 보나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애써 꿀꺽 삼켰다. 머뭇거리는 동안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 행정수도 문제를 어떻게 보나?”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질문이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싸늘하게 굳어만 갔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자네, 신문 안 보나?” 


그 후로 식탁 위에는 정적만 흘렀다. 여자 친구의 집에서 먹는 첫 저녁 식사가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엉망이 됐다. 밥알이 모래 같았다. 도망치듯 나왔다. 따라 나온 여자 친구가 말했다. “아빠가 신문도 안 보는 녀석이랑 사귀게 둘 수 없대.”  신문이 뭐라고 내 사랑을 막는단 말인가. 다음 날부터 여자 친구의 귀가 시간이 초저녁으로 당겨졌다. 밤에는 통화도 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렇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몇 장 넘기기도 힘들었다. 잠만 왔다. 


일주일이 지나자 비로소 신문의 재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생생했다. 신문에는 바로 어제 있었던 일들이 실려 있었다. 그러니 책이나 교과서와는 다른 싱싱한 맛이 있었다. 상세했다. 신문에는 티브이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디테일이 있었다. 기사의 분량과 지면 배치로 뉴스의 중요도와 맥락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신문을 같이 볼 때면 마치 여러 개의 눈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사안을 상하좌우에서 입체적으로 보는 맛에 푹 빠졌다. 신문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늦게 배운 신문 읽기가 참 재미있었다.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오려둔 기사와 사설을 A4지에 붙였다. 그 옆에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사건을 다른 매체가 어떻게 서로 다르게 보는지’를 빼곡하게 적었다. 카드도 썼다. ‘아버님, 신문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란 서류 봉투에 함께 넣어서 여자 친구에게 줬다. “오빠, 봉투에 뭐 들었어? 아빠가 참 당돌한 녀석이래.” 






이후 연애는 순조로웠다. 통금 시간부터 밤 12시로 늘어났다. 하지만 신문은 내게 그보다 더 많은 걸 주었다. 무상급식을 주제로 한 전국 토론 대회에서 수상할 수 있었던 건 찬반을 균형감 있게 정리하고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스크랩해 둔 기사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개발도상국형 귀체온계’를 만들어 신종플루에 걸린 동남아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단편적인 정보의 위험성을 경고한 미래학자 니컬러스 카의 말이 아니더라도 내 생각이 좀 더 깊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신문을 읽으며 매일매일 세상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요즘은 여자 친구 손을 잡는 대신 신문을 손에 들고 다닌다. 이제 나도 곧 사회인이 된다. 다음 달에는 입사 면접을 본다. 40쪽 신문을 세 번 접으면 320쪽짜리 책 한 권이 된다. 매일 책 한 권을 떼는 셈이다. 면접장에서 이 질문을 고대한다. “자네, 신문은 보나?” 자신 있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2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중 대학부 장려상 강한 님의 '자네, 신문은 보나?'를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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