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4. 13:19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얼마 전 서울 성동구청을 지나다가 특이한 것을 보았습니다. 분명 공중전화박스인데 외관에는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져 있고 부스 안에는 무언가가 빼곡히 차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겉은 공중전화박스지만 속은 도서관이더라고요. 세상에서 제일 작은 도서관으로 태어난 공중전화박스, 함께 살펴볼까요?
▲성동구청 내부 공중전화박스 도서관 ‘책뜨락’
공중전화박스 도서관 외부에는 두 가지 안내가 있었는데요. 책 대여에 관한 이용 규칙과 이용자 준수사항이 그것이죠. 책을 빌리려면 내부에 비치된 신청함에 대출증을 작성해 내야 해요. 부스의 책은 “시민들이 직접 채우는 것” 문구도 있어요. 즉, 공중전화박스 도서관은 각자 다 읽은 책, 혹은 읽지 않는 책 등을 가져와 꽂아 두고 다른 책을 빌려 읽는 등 책을 품앗이 하는 형태죠. 그래서 도서관의 책은 오래되고 빛이 바랜 서적도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주인의 손때가 묻은 책의 모습이 더 정겨워 보였어요.^^
외관 아래에는 도서 부스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담당 부서의 연락처가 있었고요. 부스의 외관 디자인은 인근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교육과에서 재능기부형태로 제공했다는 훈훈한 안내와 KT에서 부스 기증을 했다는 문구도 보입니다. 휴대전화 대중화로 사람들에게 외면 받던 공중전화박스가 이렇게 도서관으로 훌륭히 재탄생 되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공중전화박스 내부에는 수십여 권의 다양한 책이 꽂혀 있는데요. 아래쪽에는 대출을 위한 신청함도 자리하고 있네요. 도서 대출증을 자율적으로 작성한 뒤 신청함에 넣고 책을 빌려가면 됩니다. 작성자 이름도 쓰고, 도서 반납 예정일을 스스로 정해 적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무인 대출 시스템이라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미리 받아내면 좀 더 책임감 있게 책을 빌려보겠죠?
이렇게 공중전화박스를 도서관으로 만들자는 생각은 영국에서 처음 나왔는데요. 영국 남부의 웨스트베리 서머셋 마을에서는 사용하지 않아 폐기 위기에 놓인 공중전화박스에 마을 주민들이 책이나 DVD를 갖다 놓으면서 공공도서관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라고 해요.
[사진 출처= BBC]
이 마을에서는 전화박스가 주민들을 모으는 허브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서로 책을 공유해서 보는 것이 공동체 의식 강화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도서관을 찾기에 시간이 부족한 이들이나 평소 책을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소외계층에게도 공중전화박스 도서관은 책을 가까이 하기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해요.
최근 10년 새 휴대전화가 생활필수품이 되면서 거리의 공중전화박스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스를 철거하기보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부스를 이용해 도서관으로 재탄생시킨 아이디어가 빛나지요. 지나가다 시민들의 눈길을 끄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만으로도 공중전화박스 도서관은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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