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를 통한 초등 미디어교육

2018. 3. 22. 18:02수업 현장

  새로운 개정 교육과정에서 6대 핵심역량 중 하나로 지식정보처리 역량을 제시했고,로 인해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이용하여 정보를 평가‧비판하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비판적 사고’를 반영한 초등학생 대상 수업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성철(부산 주감초등학교 교사)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밤마다 몰래 서동과 만난대요.” 


천 년도 넘은 이 향가에 얽힌 이야기는 백제 무왕이 된 서동의 훌륭한 지략과 상남자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서동요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요건을 충족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최초의 가짜 뉴스(?)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으니, 미디어교육을 고민하는 교사가 보기에 서동은 참으로 괘씸한 위인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서동요 못지않은 막장 내용의 가짜 뉴스가 판쳤는데, 그 예로 “힐러리가 이슬람국가에 무기를 팔았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와 같은 것들이 있다. 많은 사람은 가짜 뉴스가 트럼프의 당선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러한 뉴스에 대해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아닌 태도)의 모호한 태도를 보였을 뿐 아니라, 평안했던 스웨덴을 테러 피해국으로 언급하며 자신의 반테러 정책을 강화하는 등 서동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단순한 루머나 거짓말과 달리, 가짜 뉴스는 분명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이에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진영과 구글 등의 포털 사이트에서는 가짜 뉴스를 검증하고 대응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언론사에서는 자체적인 팩트체크 기능을 강화하고 있으며, 비영리기관에서는 뉴스소비자를 위해 가짜 뉴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하였다. 지난 1~2년은 그야말로 가짜 뉴스와의 전쟁이었다.


우리 주변의 가짜 뉴스와 학생들

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 탄핵 정국 때는 ‘북한이 특수부대를 침투시킨다.’, ‘모 후보가 공산주의 혁명을 준비한다.’ 등의 유언비어가 여의도부터 산골 마을회관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수많은 가짜 뉴스에 일일이 대응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정치적 사안이 아니더라도 우리 학생들의 주변은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예를 들어, 모 학교의 일부 여학생들이 패거리에서 이탈한 한 여학생과 다른 남학생이 연인관계라는 가짜 정보를 만들고, 지속해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린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학술적 의미의 가짜 뉴스로 보기 어렵지만, 학생들 주변에서 가짜 정보나 뉴스가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고, 무분별하게 수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창의성, 탐구력 등 고등사고력을 끊임없이 강조했던 이전 교육과정들은, 블룸(Bloom)이 말한 최고의 사고력인 평가 능력(Evaluation)[각주:1]의 ‘비판적 사고기능’을 간과해왔다. 하지만, 수많은 학자와 교육자들의 노력 끝에 새로운 개정 교육과정에서 정보처리 역량 하위요소로 비판적 사고력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이용해 정보를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1. 수업 준비


교사 두 명이 협력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수업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남혜정(좌), 이성철(우) 선생님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본 수업은 2017년 11월 30일, 동궁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획되었다. 수업의 목표는 ‘가짜 뉴스 분석 활동을 통해 가짜 뉴스의 특성을 알 수 있다’로 정하였으며, 재구성 수업의 근거로 [6국02-04] ‘글을 읽고 내용의 타당성과 표현의 적절성을 판단한다’, [6국02-05] ‘매체에 따른 다양한 읽기 방법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적용하며 읽는다’ 두 개의 성취기준을 선정하였다. [6국02-04]의 경우 가짜 뉴스가 가지고 있는 근거의 부족함이나 과장, 논리적 비약을 찾아보는 활동과 관련이 있으며, [6국02-05]의 경우 신문 매체라는 특성을 통해 가짜 뉴스의 특성을 분석해보는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두 개의 성취기준과 수업활동으로 길러낼 수 있는 핵심역량은 지식정보처리 역량이다. 이 역량은 다양하게 축적된 지식을 통해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인데, 해당 학급의 학생들은 꾸준히 신문을 읽고 만드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으며, 평소 질문 만들기 활동을 통해 의심하고 따져보는 사고활동을 1년간 진행해왔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수업은 해당 학급의 담임이자 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리터러시 교과연구회 활동을 필자와 함께하고 있는 남혜정 선생님과의 협력수업으로 진행하였다. 협력수업은 두 명의 교사가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다. 미디어교육처럼 낯선 수업 주제를 일선 현장에 나눌 수 있으며, 한 명의 교사가 미디어를 다룰 때 생길 수 있는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을 점검하기에 좋았다. 두 명의 교사가 하나의 수업을 진행하니 대단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지만, 어느 정도 파트너십이 생기면 아이디어만 공유한 뒤 대화를 통해 수업을 진행할 수 있기에 시나리오 등은 만들지 않았다. 

 

수업날 교‧강사 및 기관 담당자들을 초청, 함께 교육 결과물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는 등 

미디어 교육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첫 장을 열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필자는 이 수업이 기존의 일회적 공개수업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디어교육은 교사와 학생 간의 수업 문제가 아니다. 일전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미디어교육 석학인 데이비드 버킹엄(David Buckingham) 교수는 미디어교육 진흥을 위해 미디어산업의 관심과 교육 주체 간 네트워크, 사회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때문에, 본 수업을 기획하며, 교실을 넘어 미디어교육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부산지역에서 미디어교육을 위해 애쓰는 언론진흥재단 부산 지사 및 시청자미디어재단 담당자, 미디어교육을 고민하는 현장 교사 및 기관 소속 강사를 초청했다. 또, 미디어교육 수업이니만큼 기자와 아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산일보사의 이우영 기자가 참석하였다.


2. 수업 진행

언론진흥재단에서는 지난해 유명 유튜버 ‘대도서관’과 함께 뉴스 리터러시를 주제로 한 온라인 콘텐츠를 기획하였다. 여기서 대도서관은 한석준 아나운서와 가짜 뉴스 OX 퀴즈를 진행했는데 진짜 같은 가짜 뉴스, 가짜 같은 진짜 뉴스 사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업은 이 영상에서 제시된 몇 가지 사례와 필자가 알고 있는 사례를 더해 시작되었다. 남혜정 선생님과 필자가 문제를 번갈아 가며 출제한 뒤,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퀴즈의 정답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다음과 같은 퀴즈가 출제되었다.

 



정답은 순서대로 ✕,○,✕이다. 위 뉴스 중 두 개의 가짜 뉴스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믿었던 가짜 뉴스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빛 너머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더불어, 진실이라고 생각한 뉴스가 거짓임이 밝혀졌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은 학생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뉴스를 보고 가짜인지 진짜인지 판단하고 그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분석하는 모습 <사진 출처: 필자 제공>


가짜 뉴스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소재 또한 자극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짜 뉴스를 교육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가에 대해 고민한 끝에 재구성된 형태의 가짜 뉴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여러 가지 형태의 가짜 뉴스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혼합하여 가짜 뉴스의 이른바 프로토타입[각주:2]을 제작하였다. 크게 펼친 현수막을 보며 학생들은 어떤 점이 의심스러운지 모둠별로 토론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CNM과 BBB는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임을 지적했으며, 본문에 등장한 교수의 이름과 그에 대한 소개가 의심스러운 점을 찾아냈다. 어떤 학생들은 발행정보가 의심스럽다는 점, 기사문의 바이라인[각주:3]이 생략된 점을 집어내기도 했다. 또, 기사에 첨부된 영문 인터뷰 내용이 얼마 전 음악시간에 불렀던 비틀스의 ‘Yesterday’ 가사와 동일하다며 분개한 학생도 있었다. 열두 살에 불과한 학생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총동원해서, 가짜 뉴스를 낱낱이 분석했다.


3. 수업 마무리


가짜 뉴스의 특징을 분석하는 학습 자료 <사진 출처: 부산 뉴스 리터러시 연구회>


학생들이 분석해 낸 가짜 뉴스의 특징을 활동지의 빈칸 채우기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학생들은 간단한 활동을 통해 10가지의 가짜 뉴스의 특징을 이해하고 이를 구분해 낼 수 있는 명시적인 개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짜 뉴스 분석을 위한 ‘진실의 체’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남혜정 선생님과 수업 마무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가짜 뉴스의 특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에도 뉴스의 다양한 특성을 눈여겨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 역시 중요하므로 이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체’를 생각해냈다. ‘체’는 혼합물을 물리적으로 분리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수업 말미에 학생들에게 ‘체’를 보여주며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가릴 수 있는 ‘진실의 체’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였다. 학생들은 아쉬움과 뿌듯함 속에 저마다 소중한 진실의 단서들을 체에 써넣었다.


교사 중심의 수업협의회와 달리 학생, 교‧강사, 학부모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협의회를 마련하여 

뉴스 리터러시 수업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기존의 수업협의회는 교사들만 모여서 수업 활동이 어땠는지, 모형이 적절했는지, 교사의 발성이나 눈빛은 어떠했는지 이야기하는 수준이었다. 정작, 수업의 주체인 학생은 소외되었다. 미디어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기 위해선 학생, 학부모, 교사, 미디어교육 담당자와 강사, 학자, 언론인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협의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수업협의회에서는 오로지 미디어교육을 진행한 소감과 궁금한 점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수업에 참여하거나 진행한 우리 모두 PMI(장점, 단점, 흥미롭거나 궁금한 점) 기록지에 수업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썼으며, 다함께 둘러앉아 미디어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협의회에서 학생들은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디어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질문했다. 필자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단어나 개념이 없었는지 학생들에게 질문하였고, ‘보도라는 말이 낯설었다.’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수업만큼이나 후끈했던 협의회는 뉴스 리터러시 수업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한 학생의 건의사항으로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


본 수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뉴스 리터러시 수업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현장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 기관 담당자들 외에 네트워크 구성을 위해 접촉했던 기관 담당자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 거리와 시간 등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물론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지역에서 홀로 분투하는 미디어교육자들에겐 참으로 힘 빠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 많이 알리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했던 수업이었지만 필자에겐 보석처럼 영롱하고 감동적인 추억과 깨달음으로 남을 것이다.




- 이 수업 사례는 부산일보 “[부산 동궁초등 미디어교육 참관기] ‘자극적인 가짜 뉴스, 더 이상 안 속아요’” (2017.12.5.) 기사로 소개되었다.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71205000212



  1. 오리지널 버전의 Taxonomy에서 마지막 6단계는 평가적 기능이다. 개정판에서는 창의성이 모든 사고기능을 포함하는 최상의 고등사고력이다. Hoy, Anita Woolfolk (2007). Educational psychology (10th ed.). Boston: Pearson/Allyn and Bacon. pp. 530~531, 545. [본문으로]
  2.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시제품을 만들기 전에 의사소통과 수정을 목적으로 간략하게 구현한 모델을 뜻한다. [본문으로]
  3.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문을 작성한 기자의 이름, 이메일 등을 기재하는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