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함께 출연한 아동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까?

2022. 8. 23. 10:00특집

 

 

부모와 함께 출연한 아동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까?

TV 육아 예능과 어린이 인권

 

 

지난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 출연 아동·청소년의 권익 보호를 위한 표준 제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특히 “아동·청소년이 방송 출연으로 인해 사이버 괴롭힘,

악성 댓글 등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이드라인 제정에도 불구하고,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안전과 인권이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최근 육아 예능 속 어린이 인권 문제를 살펴보았다.

 

 

최 숙(타이밍포올 CEO)

 

 

부모의 동의하에 영상이 촬영되며, 출연하는 동안 시청자의 호감과 찬사를 받고,

유명인이 되고 싶지만 평범한 일반 어린이는 누릴 수 없는 ‘특혜’를 받았다고 해도 이들 역시 어린이이며,

TV 노출로 인한 인권 보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TV 속 어린이는 매우 매력적인 출연자이다. 암흑처럼 어둡고 삭막한 장면에서 어린아이가 등장해 아장아장 걷기만 해도 화면 속 분위기는 즉각 달라진다. 그렇다고 마냥 밝고 귀엽지만은 않다. 오히려 가혹한 행위에 무력하게 당하는 약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어른들 속에서 주도적이지 못한 채 폭력적인 상황에 불가피하게 묶여 있는 아이의 모습은 비극적 장면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보는 사람에게 한없이 가엽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순식간에 생동감을 주기도, 측은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어린이는 사람의 이목을 끌어야만 하는 방송에서 유용하고 매력적인 기재로 사용되고 있다.

 

미디어 속 어린이의 등장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동 범죄에 대한 선정적 보도나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드라마에서 아이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망의 대상으로 재현되는 어린이의 모습에 대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져 왔다. 불균형한 저널리즘과 영상 재현을 반복, 누적해온 제작자들은 어린이에 대한 위험한 정형화를 만들어 낼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을 촉구받아 왔다.

 

 

어린이의 TV 출연

특히 어린이 대상 범죄 보도의 심각한 선정성 문제를 비판하는 성찰적 연구가 꾸준히 발표됐다. 더불어 관련 보도 지침을 수립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독려하는 구체 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또한 어린이 실연자의 학습 권리를 보장하고 이들이 과중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호하고자 관련 제도가 시행됐으며, 어린이를 등장시키는 영상 제작 및 배포 시 주의해야 할 가이드 등이 추진됐다.

 

그러나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일상화되어 진지하게 각성되지 않아 더 위험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속 어린이 재현과 관련한 이슈다. 특히 ‘육아 예능’의 어린이 재현에 제기되고 있는 불편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재미와 흥미를 최우선 가치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문제적 상황에도 유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어린이를 소비재로 치환하고, 욕망의 대상화로 삼는 과정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시청률을 보장받았던 유명 연예인과 귀여운 자녀의 등장을 기본 포맷으로 시작해 점차 변주해 왔다. 1990년대 ‘GOD의 육아 일기’를 효시로 ‘아빠, 어디가?(MBC, 2013)’, ‘슈퍼맨이 돌아왔다(KBS, 2013)’ 등 본격적인 육아 예능이 제작됐다. 최근에는 이혼한 여성 연예인과 자녀가 출연하는 ‘내가 키운다(JTBC)’, 외국인 아빠들의 육아를 관찰하는 ‘물 건너 온 아빠들(MBC)’이 방송됐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와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교차되어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채널A)’처럼 ‘육아 상담 예능’을 표방하는 프로그램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상담사 역할을 하는 오은영은 아이돌 그룹, 성인, 부모,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에서 등장하고 있다. 육아 예능은 아니지만 ‘전지적 참견 시점(MBC)’, ‘편스토랑(KBS)’, ‘살림하는 남자들(KBS)’ 등 다양한 관찰 예능 형식을 빌고 있는 프로그램도 유명인의 일상을 비추면서 이들과 자녀들의 관계를 다룬다. 또한 ‘우리 이혼했어요(TV조선)’, ‘돌싱글즈(MBN)’, ‘고딩엄빠(MBN)’처럼 이혼이나 미성년 부모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 함께 등장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조명하는 방식에서도 육아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을 가늠해 보게 된다.

 

육아 예능과 육아 예능적 방송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출연한 부모의 범죄나 이혼, PPL, 과도한 훈육, 폭력적 육아 방식의 희화화 등 다양한 부분과 관련돼 있다. 각각의 이슈 모두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사안이겠으나 무엇보다도 어린이의 인권 측면에서 성찰해 보아야 한다.

 

 

육아 예능의 확대와 걱정되는 어린이 인권

2020년 5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대해 방송심의 규정 ‘인권 보호’, ‘출연’ 조항 등을 위반했는지 심의하고 행정 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국제 아동 인권 보호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아동의 공포심을 조장하고 흥밋거리로 소비했다”라 지적하며 심의 민원을 제기한 뒤에 내려진 징계 조치이다. 해당 방송에서 가수 출연자는 자신의 만 2세 아들에게 장난삼아 체육관장에게 연달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보여주어 아들을 놀라게 하고, 이후 제작진은 그 무서웠던 기억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제작진은 의도하지 않은 사고 상황이라고 답변하며 차후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이에게 생길 수 있는 트라우마뿐 아니라 아이의 감정 상태와 관련한 문제를 가벼이 여기는 제작진의 태도에 대해 다시 지적받았다. 심의위원회는 제재 수위를 결정하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법정 제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사실 행정 지도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반영되지 않는 경징계에 불과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출연 어린이가 한 프로에 장시간 출연하는 것, 학습권을 침해하는 시간대에 촬영을 진행하는지 정도를 심사할 뿐 구체적인 심의 규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육아 예능 어린이 출연자의 인권 침해 문제는 규제의 허술함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출연자 부모의 동의하에 영상이 촬영되며, 출연하는 동안 시청자의 호감과 찬사를 받고, 유명인이 되고 싶지만 평범한 일반 어린이는 누릴 수 없는 ‘특혜’를 받았다고 해도 이들 역시 어린이이며, 인권 보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와 아동 인권 보호 지침

미디어에 어린이 인권을 고려한 제작을 촉구하는 몇 개의 미디어 가이드가 있다. 이 중 유니세프의 ‘아동에 대한 언론 보도 원칙 및 지침’1)이나 국제 구호 개발 NGO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가 제안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등을 적용하여 육아 예능을 다시 살펴보면, 그간 그저 텔레비전 속 아이들을 보며 마냥 웃고 귀여워하고 불쌍해 했던 순간을 잠시나마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 두 개의 가이드라인에 어긋나는 방송 사례는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무엇보다 이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낙인 효과’를 잠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경계돼야 한다. 어린이들이 선망하는 물건 PPL, 화려한 주거 공간과 옷차림, 특별한 촬영 이벤트, 부모의 경제적 부유함 속에서 여유롭고 민주적인 양육을 받는 행복한 모습으로 비친 어린이 출연자들은 오히려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특혜 받은 어린이’로 낙인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출연자 부모가 이혼하거나 범죄에 연루되어 구설수에 오르게 되는 사건 이면에서 ‘불쌍한 아이’, 또는 ‘나쁜 부모의 DNA를 물려받은 아이’로 낙인찍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우려를 실증하듯이, 최근에는 과거 육아 예능에 출연했던 아이들이 훌쩍 커서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그동안 안티 카페, 악플, 사생활 침해 등 그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는지 진술하고 있다.

 

최근 훈육의 긍정적 효과와 필요성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육아 상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에 ‘문제 어린이’로 등장했다가 ‘해결된 어린이’가 된 아이들 역시 낙인 효과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또한 ‘사랑하는 마음에’, ‘진심 어린 충고를 위해서’, ‘정상적’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차원의 해결을 위해서라면 미성년자, 어린이에게 혹독한 직설을 해도 되는 무한 권력을 부여받은 상담 전문가 역시 낙인찍기에 동참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청소년 출연자(사진 오른쪽)와 오은영 박사. 2022.6.17. 방송분. <사진: 채널A 방송 화면 갈무리>

 

 
 

 

미디어는 어린이를 출연시킬 때 어린이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보호한다는 원칙을 최우선해야 한다. 어린이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침해받지 않을 프라이버시를 보장받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엄연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인식의 대상이 되고, 이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위험을 당연히 감수해야 하도록 그대로 남겨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린이 시청자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야

또한 반드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이 있다. TV 속 어린이를 보는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우선, TV 속 행복해 보이는 어린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폭력적인 어른의 육아에 대한 무의식적인 순응, 인기를 위해서는 인권 침해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 자녀는 부모의 일상 중 일부라고 인식할 가능성 등 육아 예능을 시청하는 어린이가 직접적으로 받게 될 영향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TV 속 육아 방식을 모범으로 수용하는 부모와 그러한 가정에서 자라야 할 어린이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의자’를 마련하고, 집에 텔레비전을 없애거나,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두꺼운 책을 읽게 한다는 등의 소위 육아 ‘팁’이 일반화되어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인식되면,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적용되어 오히려 부작용을 낳게 되는 사례도 있다.

 

자녀를 사랑하는 모든 부모가 자녀를 존중한다고 말할 수 없다. TV 육아 예능에 나오는 사랑스러운 어린이 출연자와 우리 사회 모든 어린이의 인권이 온전히 존중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모와의 온전한 관계를 고민하는 육아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는 성찰의 시간과 제도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유니세프 ‘아동에 대한 언론 보도 원칙 및 지침.2)

 

 

 

 

 


1) https://www.unicef.org/armenia/en/stories/principles-and-guidelines-media-reporting-children

2) 이 이미지는 필자가 원본 영문 자료를 구글 번역하고 재편집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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