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여성 혐오는 외면,갈등의 원인을 ‘페미’ 탓으로

2021. 11. 19. 16:15웹진<미디어리터러시>


안산 선수의 숏컷에 대해 “숏컷하면 페미 아닌가요?”라는 댓글이 달리면서 금메달리스트에 대한 ‘페미 논란’이 벌어졌다. 선수에 대한 마녀사냥 속에 온라인에서는 숏컷 인증샷, 안산 선수를 지키기 위한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는 한편, ‘페미 선수의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과, “중요한 것은 ‘남혐 표현’”이라는 야당 대변인의 논평까지 줄을 이었다.
한국의 언론이 이를 ‘젠더 논란’, ‘젠더 갈등’, ‘남녀 갈등’으로 바라보는 동안, 외신은 이 문제를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온라인 학대로 규정했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관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갈등’ 속 숨은 진실
사전적 의미로 갈등은 ‘두 개 이상의 집단이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대립하거나 충돌을 일으키는 것’으로 균형/안정이 깨진 상태를 의미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립하는 집단의 관계, 이해관계상의 차이가 나타나게 된 맥락이다. 흔히 미디어에서 접하게 되는 노사 갈등, 인종 갈등, 미·중 갈등, 여야 갈등 등에서 등장하는 두 집단은 서로 상이한 관계에 놓여 있다. 후자의 두 개의 갈등 속 집단(미중과 여야)이 사각 링에서 동일한 또는 엇비슷한 체급에 있는 선수들의 대립으로 비춰진다면, 전자의 노동자-자본가, 백인-유색 인종은 확연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기다. 갈등하는 집단이 놓인 맥락,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에 유의하지 않은 채, 단순히 ‘대립, 논란’으로 갈등을 규정하는 순간, 노동자와 자본가, 백인과 유색 인종 사이의 불평등이라는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삭제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젠더 갈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누가 왜 갈등하고 있는가, 그리고 젠더 갈등은 왜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이슈로 부상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은 비단 최근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식민지 시기 공창제 반대 운동, 축첩 반대 운동, 해방 이후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했던 가족법 개정 운동, 2000년대 초반 군 가산점제를 둘러싼 대립 등 당시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에 도전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여성들의 움직임은 언제나 차별을 유지하려는 집단과 충돌해 왔다(이재경, 2013).
학계에서 간간히 논의되던 ‘젠더 갈등’이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미디어 담론을 기준으로 볼 때 2018년이다.1) 언론은 불법 촬영에 대해 ‘동일 범죄 동일 처벌’을 내세웠던 혜화역 시위, 이수역 쌍방 폭행 사건, 곰탕집 성희롱 사건,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의 현상을 젠더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했다. 그런데 2018년은 미투 운동이 확산된 해이자, 혜화역 시위, 낙태죄 위헌 신청, 불꽃페미액션의 페이스북 코리아 사옥 앞에서의 상의 탈의 시위 등이 일어난 해다. 한국 사회 역사상 처음으로 일상 속 성차별과 젠더 폭력에 맞선 행동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때 ‘젠더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공론장에서 부각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의 젠더 갈등은 누가 갈등하고 왜 갈등하고 있는가라는 부분에서 이전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즉, 과거에는 기성세대 남성이 차별을 통해 가부장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집단이었다면, 지금은 스스로를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회적 약자, 역차별의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는 남성과의 갈등이라는 점이다(권김현영, 2019; 김수아. 이예슬, 2017). 그렇기에 최근의 젠더 갈등은 성차별의 존재를 인정하는 집단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 차별이 엄연히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는 집단/인식과의 갈등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젠더 갈등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기가 아니라, 동등한 사각 링에서의 경기로 비춰지는 효과를 낳는다.

언론: 갈등의 중계자이자 증폭자
근대 이후 미디어는 개인과 사회적 현실을 매개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특히 핵심적 공론장으로서 언론은 해당 사회가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지, 현상에 대해 무엇을 묻고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특히 사회적 약자 및 이들이 겪는 차별에 관련된 이슈는 소수자의 사회적 위치와 현상을 둘러싼 구조적 맥락-불평등-을 주의 깊게 인식하며 다뤄야 한다. 그러나 젠더 갈등과 관련된 보도에 비춰볼 때 그에 대한 평가는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첫째, 안산 선수 관련 보도, GS리테일의 손가락 포스터 사태 관련 보도가 보여주듯 현재의 젠더 갈등 이슈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논쟁 → 레거시 미디어의 보도’라는 경로를 통해 공중의 이슈로 부상했다. 온라인 공간은 다양한 목소리가 넘쳐나는 공간이며, 디지털 성착취의 사례처럼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와 의제를 던지는 디딤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갈등 이슈에 있어 온라인 공간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이다. 보도 비평을 통해 지적됐듯이, 대다수의 한국 언론은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에 올라온 날것 그대로의 발언 또는 혐오 표현을 있는 그대로 중계하기에 급급했다. 게시물 속 내용이 사실에 입각한 것인가,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검증 책임은 방기했고, 비슷한 취향과 의견이 결집된 공간이라는 특성상 발화 속에 편향성이 내재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질문이 사라진 채 ‘중계방송’ 식 보도를 이어가며 언론은 갈등 해결자가 아닌 방관자 또는 증폭자로서 논란을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
둘째, 현재의 젠더 갈등은 계급, 세대, 젠더 불평등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기존의 성차별적인 젠더 시스템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이에 대한 백래시가 공존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이다. 젠더 갈등 관련 보도는 이를 간파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통찰하는 접근이 요청된다. 하지만 ‘페미 논란’, ‘메갈 논란’이 시사하듯, 언론은 남초 커뮤니티의 어법을 따라가며 표피적인 현상에만 주목한 결과 갈등의 원인을 ‘페미’, ‘메갈’ 즉 페미니스트 여성에게 전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결과 젠더 갈등의 근본적 원인인 현실 세계의 성차별과 그에 근거한 여성 혐오의 문제는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안산 선수 ‘페미 논란’에 대해 여성에 대한 온라인 학대가 아닌 ‘젠더 갈등’으로 접근한 우리 언론의 태도는 젠더 이슈 보도의 젠더 맹목성(gender-blindness)과 현실의 성차별을 비가시화하는 ‘젠더 갈등’ 프레임의 정치적 효과를 보여준다.

변화를 위해서
변화의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이후 여성 기자들을 중심으로 젠더 이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새로운 모색을 시도했던 언론사(예를 들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의 경우, 현실 속 성차별과 여성의 삶의 문제를 조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털/모바일 중심의 뉴스 생산 환경 속에서 일선 기자와 언론사의 심층 보도를 위한 노력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시장 주도의 언론 환경 속에서 언론사의 이러한 움직임이 유지되고 확장되기 위해서는 이를 견인해줄 외부의 힘 역시 중요하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좋은 저널리즘을 만들 수 있는 조건으로 거론되는 미디어 리터러시와 독자의 힘은 젠더 이슈에도 예외는 아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넘쳐나는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성차별과 혐오에 대응할 수 있는 성인지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마련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1) ‘젠더 갈등’ 이슈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빅카인즈’를 이용한 분석을 실시했다. 일반적인 제목+본문에 대한 분석과 함께 기사 제목에 대한 분석도 병행해 이루어졌다. 제목 분석 결과 ‘젠더 갈등’이 언론 보도에 명명된 때는 2018년이었다.


<참고문헌>
권김현영 (2019). 불평등 감각의 젠더 차이: 성차별 현실에 대한 부정과 인정. 창작과 비평, 47(3), 35~53.
김수아, 이예슬 (2017). 온라인 커뮤니티와 남성-약자 서사 구축. 한국여성학, 33(3), 67~107.
이재경 (2013). 한국 사회 젠더 갈등과 사회 통합. 저스티스, 9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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