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를 본 법대생이 신문을 펼친 이유

2012. 8. 8. 09:5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법치 국가의 틀과 그 틀을 지탱하는 논리를 공부한다는 것이다. 조문과 조문에 대한 학설을 외우고 학설의 주장과 비판들을 습득하며 보다 정당하고 논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법학도가 가져야 할 일차적인 학습 목표다.






이렇게 법을 공부하는 초기에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대법원 판단의 논리는 주어진 법률 체계하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습자는 현행 법률 체계라는 것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매체에서 어떤 사건의 비참하고 억울한 면을 조명했을 때 사안의 법적 현실부터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현행 법제도상에서는 어쩔 수 없어’라고 말이다.


아직 법이 버겁던 1, 2학년 시절 수업 중 교수님께서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휴머니즘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린 법학도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말이기는 했으나 동시에 잘 이해할 수 없는, 다시 말해 마음으로는 알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구였다. 하지만 이제 이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법학과 현실의 조화는 인간애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휴머니즘을 조명하는 가장 힘센 매체는 내게 신문이었다.


작년 한 장애인 시설의 인권 유린에 대한 영화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영화에서 끝났다면 단순히 잔혹한 실화였겠지만 신문은 무수한 특집 기사들과 무시되었던 유사 사례들을 찾아내 발 빠르게 기사화하였다. 이렇게 해서 영화에 반응하는 여론을 더 참혹하고 필히 사라져야 할 현실로 이끌었다.


이 사건은 또한 법과 실제 현실은 이렇게 유기적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장애인 시설의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기사들이 보도되고 곧이어 사회복지 전문가, 법 전문가 및 사회 운동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장애인 시설에 대한 법규를 시정하고 장애인 처우를 개선하려는 시민단체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들은 다시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다.


당시 나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다루는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이 사건은 수업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때 교수님이 중점을 둔 곳은 법의 내용이 개정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변화 과정에 주목했다. 기사들을 모아 사회의 촉구에 법이 개정되는 움직임을 파악했다.



[출처-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영상도, 배경음악도 없는 신문 기사들은 반복해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헌법이 말하고 있는 인권은 결국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이며 휘하의 법률들은 차츰 그 이상에 맞게 포섭되어 가는 거대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법은 인간애에 의해 만들어졌고, 인간애에 의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해 간다.


신문은 사회의 비참한 면을 계속해서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사들을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 법은 보다 헌법적 이상에 맞게 변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사회 이면을 드러내는 기사들은 내게 회의가 아닌 인권에 대한 각성제가 될 것이고 이정표가 될 것이다.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항상 참고할 지표가 될 것이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2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중 대학부 장려상 수상작 박희진 님의 ‘나의 이정표’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