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내 미디어교육 구현 가능성

2018. 4. 9. 10:54특집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는 구현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주시민 교육이 변하고 있다. 이에 미디어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해본다.



김성천(교육정책디자인 연구소장)


교육기본법 제2조에는 교육 목적을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인간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법률과 교육과정에서는 교육 목표를 '민주시민 양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문서상의 교육과정’이 ‘구현된 교육과정’으로 전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리플릿 표지 <사진 출처: NCIC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민주시민의 삶을 우리가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서구 민주주의 제도를 급히 이식해왔지만, 문화적 토대가 취약하여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중앙집권 및 권위주의적 교육시스템은 민주시민 교육의 필수 요소인 비판과 참여의 공간을 축소시켰다. 특히, 입시 위주의 교육은 학력고사나 수능에 대비하기 위해, 관련 내용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기보다 암기하게 만들었다. 주입식·암기식 교육은 토론과 토의, 질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그 존재 목적이 있는 사회과나 윤리과는 내용 체계에 있어, 대학교의 개론서를 축소한 방식을 차용했다. 이론과 지식 위주로 그 내용이 구성되다 보니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직접 실천에 이르게 하는 프로젝트 방식의 수업을 구성하는 데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학생자치회 활성화라든지 학급회의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통제와 처벌 위주의 교칙으로 인해 시민역량을 길러내는 문화적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은 곧 앎과 삶의 분리를 의미한다. 민주시민 교육은 교과서의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삶과 문화의 과정을 통해 익혀야 한다. 


공교육의 변화

다행스럽게도 민주시민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최근 학교는 변하고 있다. 학생 인권조례가 논란 끝에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체벌 금지라든지 두발 자율화만을 다루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학생을 어떤 존재로 바라봐야하며, 학교는 어떤 공간인가 성찰한다. 


최근 들어 민주시민 교육을 강조하면서 경기도교육청 등 일부 교육청에서 관련 교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식과 이론 위주로 구성된 사회과 교과서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기 때문이다. 교재는 민감한 주제를 찬반 토론 방식으로 다루기도 하고, 사회 현상을 깊게 분석해보기도 한다. 또 하나, 대학교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을 포함한 수시 전형이 늘어나면서 학생 동아리라든지 학생자치회 활동 등을 오히려 권장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입시 준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런 활동들을 막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도 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교육 자치’와 ‘분권’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교육부가 지닌 권한을 교육청과 학교에 제대로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불필요한 사업과 예산을 줄이면서 궁극적으로 단위학교의 자율과 자치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문제는 학교 민주주의이다. 구성원들의 참여와 소통이 문화와 제도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 3주체가 학교의 방향과 비전, 내용을 만들어가면책무를 함께 질 때 학교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경기도교육청과 서울교육청에서는 민주시민교육과를 설치하였으며, 2018년 1월 1일자로 교육부에서도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이처럼 민주시민 교육을 단위학교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우리 교육의 핵심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디어교육과 학교 민주주의

이러한 흐름으로 볼 때, 미디어교육은 학교 민주주의를 구성하고 완성하는 데 중요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미디어교육은 단체와 학자마다 정의와 영역, 목표 등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매체와 맥락에 대한 지식 습득, 텍스트에 대한 분석 및 비판, 사회적 참여, 자아 표현 및 표출을 통한 메시지 생산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디어교육은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매체, 매체와 매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본적 지식 습득을 통해 현상을 해석·비판·분석하는 힘을 길러준다. 예컨대, 온라인 게임 중독이라는 현상을 놓고 볼 때 개인의 절제력 부족을 탓할 수도, 내 삶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의미(나와 나), 게임이 우리 학급과 우리 학교 아이들 삶의 공간에 어떤 문화적 양상을 보이는지 관련 실태 조사(나와 우리)를 할 수도 있다. 또한, 게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중독 요소나 메커니즘. 게임의 순기능 및 역기능 분석, 생산자와 소비자의 입장별 논점 비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찬반 논쟁(나와 매체·사회), 내가 만들어 보는 게임 기획안 등을 수업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들은 지식과 수업의 소재를 학생들의 삶과 문화에서 끌어오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각종 메시지를 생태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과정은 학생들의 고급 사고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각종 사회적 쟁점을 끌어올 수 있어서 토의·토론 수업에 유용하다. 


미디어에 통제될 것인가, 아니면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할 것인가는 미디어교육의 핵심 주제이다. 미디어에 내포된 부호와 문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독하는 과정은 민주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미디어 문법과 구조,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지식과 개념, 분석의 틀이 필요하고, 동시에 각종 메시지를 해석·분석·비판해서 볼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일방적인 주입식 수업으로는 곤란하다. 학생들은 참여와 소통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앎’은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비판의식만 잔뜩 키우고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 즉 ‘앎’과 ‘삶’이 분리되어서는 곤란하다. 불합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게임을 다루었다면, 내 삶을 돌아보면서 발생한 여러 이슈에 변화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로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미디어교육은 민주시민 교육의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 예컨대, 학생 자치회 주관으로 학생회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된다고 가정해보자. 학생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표를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기획능력과 소통능력을 요구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학생들의 행복 증진을 위한 중요한 이슈이다. 실천과 변화를 위해 학생들은 메시지를 담아서 어떤 표현을 해야 한다. 그 표현 방식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등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은 미디어교육의 본질이며 핵심이다. 선거 구호를 만들고, 포스터를 만들고, 연설 메시지를 정리하는 등의 선거 전략 수립은 매체를 매개로 한 다양한 실천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은 미디어교육 목표와 내용이 학교 민주주의 촉진하는 데 상당히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미디어 리터러시를 학교의 교육과정에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는 미디어교육 도입 초기부터 항상 단골 메뉴로 주장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교육과정 담당자의 관점에서 보면, 교육과정이라는 한정된 가방에 나름의 당위와 근거를 가진 교육과정 편입 요구가 각계각층에서 너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자체가 전쟁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과 교육에 포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창의 체험 활동으로 녹여보려고 하지만 이미 포화상태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어와 사회, 기술 등 현행 교육과정에 미디어교육을 자연스럽게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미디어와 문화, 제작, 커뮤니케이션, 자기표현, 기사 논점 비교 등은 사실 현행 교육과정에서도 일정하게 다루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미디어 리터러시 관점을 가지고 성취기준을 제시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과정은 사실상 과목 간 전쟁터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현실적으로는 교육과정 재구성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미디어교육에 대해 이해와 관심, 전문성을 가진 교사를 많이 길러내서, 이들이 자신의 교과과정에서 미디어교육 영역을 접목하는 방법이 있다. 열정이 있는 교사라면 자신의 교과는 물론 동아리나 창의 체험 프로그램에 미디어교육을 적용할 것이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잘 반영한 텍스트의 하나라는 관점을 갖는다면 미디어교육의 공간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실제로 수업의 고수들을 보면 미디어와 문화에서 수업 소재를 끌어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유학기제는 학생 참여형 수업을 통해 각 학생의 적성을 키울 수 있는 체험 활동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사진 출처: 교육부 자유학기제 홈페이지 캡처>


제도적으로 중학교는 자유학기제(자유학년제),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를 앞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유학기제는 교육과정에 상당한 변화를 주었고, 자율성과 융통성을 준 상태이기 때문에 좋은 모델을, 교사 내지는 학교 단위에서 보여준다면 확산 속도가 빠를 수 있다. 자유학기제의 핵심은 진로 체험 활동이라기보다는 교육과정을 통한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 길러주기가 핵심이다. 서열화를 위한 평가 요소가 상당 부분 제거된 상태이고, 지역사회 자원 연계 활동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교육의 공간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향후, 고교학점제는 미디어교육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유용한 제도적 틀이 될 것이다. 창의 체험 등의 영역이 아닌 교과 교육과정에서 정면 승부를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필수 교과로서 미디어교육을 상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선택 교과는 충분히 가능하다. 고교학점제하에서는 국가가 고시한 교과를 개설할 수도 있지만, 개별학교에서 별도 교과목 개설도 할 수 있다.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해야 하는 부담을 단위학교에서는 짊어질 수밖에 없다. 교양 교과라든지 진로 선택교과에서 미디어교육은 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교학점제는 단위학교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양방향 온라인 강좌나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개설, 학교 밖 학점제 인정기관 지정이 필요하다. 예컨대, A학교에서 ‘문화와 미디어’라는 교과목, B고등학교에서 ‘영상 제작의 이해와 실제’라는 교과목을 각각 개설하면 A고 학생들도 B고에 가고, B고 학생들도 A고로 가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단위학교에서 이 과목을 가르칠 교사가 마땅히 없다면 지역사회 전문가를 강사로 위촉하거나 학점형 인정기관으로 지정하여 학점제 교과를 가르칠 수 있는 시스템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유학기제나 고교학점제는 교사들만의 힘으로 학생들의 교육과정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학교 밖 단체나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인정 교과서를 활용할 필요도 있다. 여러 교육청에서는 인정 교과서를 제작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만든 민주시민 교육 인정 교과서에서도 미디어교육 관련 내용을 일부 다루고 있다. 교육감의 의지만 작동한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를 인정 교과서로 만들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교육부에서는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하였다. 이렇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각 교육청에서도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시민교육과에 기대하는 역할 중 하나는 플랫폼이다. 민주시민 교육에 관한 진정성, 열정, 전문성을 지닌 단체들의 프로그램을 필요한 단위학교에 연결해주는 작업도 필요하다. 최근 들어 마을 교육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단위학교의 힘만으로 무수히 많은 교육에 관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이러한 관점을 미디어교육에 적용한다면 학교는 허브가 되어 학생들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단체를 발굴하여 교육과정과 수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