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학부모를 위한 미디어교육 가이드북 발간

2017. 11. 2. 11:00해외 미디어 교육

프랑스 국립미디어센터 끌레미(CLEMI)는 학교 내 미디어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 산하의 전문 교육기관이다. 최근 끌레미는 미디어교육을 학교 밖으로 확장하기 위해 어린이와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가정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미디어교육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진민정(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프랑스 미디어교육이 학교의 담장을 넘어서고 있다. 가짜 정보에 맞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SNS 사용에 익숙해진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로부터 어떻게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 초연결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고 또 어떤 규칙을 만들어야 할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디어교육 공적 기구인 끌레미(CLEMI)는 미디어교육의 범위를 학교 밖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시도 중 하나가 바로 학부모를 위한 미디어교육 가이드북 제작이다. 끌레미는 어디에서나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시대에는 미디어교육이 더는 학교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자 다양한 교육 주체들과 함께 학부모를 위한 실용적인 미디어교육 가이드북, <라 파미으 투테크랑(La Famille Tout-Écran)>[각주:1]을 제작했다.


‘디지털 네이티브’도 올바른 디지털 교육 필요

98페이지 분량의 이 가이드북은 자녀들에게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 가르치기’, ‘자녀들에게 SNS 사용법 알려주기’, ‘자녀들의 디지털 기기 이용 시간 조정하기’, ‘폭력적인 이미지로부터 자녀들 보호하기’, ‘미디어와 정보 교육 실천등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각주:2] 또한, 보다 생생한 방식으로 교육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삽화를 삽입했다. 일상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3, 8살 그리고 16살의 자녀를 둔 가상의 가정을 상상해 구체적인 사례와 더불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가이드북은 끌레미의 방향과 개선 위원회소속 멤버 중 아동과 청소년의 정보 이용 방식을 연구하는 그룹이 주도했으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미디어교육의 사회적 쟁점이 학교의 담장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학교 바깥에서도 미디어교육이 지속될 수 있으려면 다양한 분야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위해 끌레미는 교육, 미디어, 정부조직, 시민 단체의 행위자들을 모두 포괄해 이들에게 실질적인 자문을 구했다.


<라 파미으 투테크랑>은 아동과 청소년의 디지털 정보 이용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테크네(Techné, 교육을 위한 디지털 기술 연구소)의 연구원인 카린 엘르리는 청소년의 디지털 이용에 대한 편견들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청소년들이 디지털 네이티브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디지털 교육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들 역시 다른 이용자들과 똑같은 인터넷 이용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터넷 이용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이며, 다만 이들에게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청소년들에게 소셜미디어는 정보를 얻는 동시에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하거나 대화를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르망디대의 안 코르디에 정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역시, “청소년들은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니라 아직 성장 중인 개인들이며 때로는 이들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분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파리 8대학 정보커뮤니케이션학과의 소피 제엘 교수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부모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폭력적인 게임이나 동영상을 접했을 때 부모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사춘기 이후까지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이들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녀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대화를 통해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외에도 많은 전문가가 자신들의 분야와 관련된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관련법 전문가인 안토니 벰 변호사는 미성년자들이 SNS를 사용하면서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을 접한 경우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하고 있고, 아동정신의학자인 세르주 티스롱과 끌레미의 교수법과 학문분과 책임자인 이자벨 페록-뒤메즈는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연령에 맞지 않는 유해한 동영상물을 시청했을 때 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조언하고 있다.

 

이들은 연령대에 따라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8살의 남자아이가 포르노그래피를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을 때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말고 아이가 본 것은 연출된 장면일 뿐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것, 남녀 간의 사랑은 서로의 존중에 기초한 훨씬 아름다운 것임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 외에도 연령별 디지털 및 동영상 매체 이용시간, 안전하게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법, 신뢰할 만한 정보 사이트 고르는 법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실려 있다.


클레미가 학부모를 위해 제작한 미디어교육 가이드북 <라 파미으 투테크랑>



아울러 학교 밖 미디어교육에 앞장서는 다양한 단체의 관계자들이 자신들이 속한 단체가 미디어교육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했다. 일례로, 가족을 위한 미디어교육 활동을 제안하는 단체인 프레캉스 에콜(Fréquence écoles)의 대표 도리 브뤼야스는 오늘날 미디어는 그 자체로 사회화의 공간이며 학교나 가족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그는 프레캉스 에콜이 참여하는 탠덤(Tandem)’이라는 유럽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 이탈리아의 부모 협회와 미디어교육 센터들이 만든 탠덤의 목표는 6~12세 어린이들이 처한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 이름처럼(tandem은 커플, 협력 등의 의미다) 교사와 학부모가 팀을 이루어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방식으로 미디어를 활용할 것인지 그 방안을 함께 모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학교 밖 미디어교육에 앞장서는 단체들

프랑스 대중 교육 분야의 개혁을 이끄는 교육연맹(Ligue de l’enseignement)에서도 미디어교육은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단체에서 디지털 발전 정책을 담당하는 앙토낭 코와는 미디어교육이 모든 악에 대한 치료제는 아니더라도 혐오 발언에 대처하도록 돕고, 이미지나 표현들에 대한 해독능력을 키울 것이라면서 교육연맹이 생산하는 다양한 교육 자료를 소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레 클레 데 메디아라는 미니 동영상이다. ‘레 클레 데 메디아2분가량의 짧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미디어교육의 근본적인 질문들, 예를 들어 정보란 무엇인가, 정보 소스란 무엇인가, 광고란 무엇인가? 저널리스트는 객관적인가? 언론들은 모두 똑같은 뉴스를 취급하는가? 등등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레 클레 데 메디아는 학교 밖 미디어교육을 위한 가장 좋은 시도로 선정되어 올 초 저널리즘 총회가 해마다 수여하는 미디어교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프랑스 교육연맹이 제작한 미디어교육용 애니메이션 ‘레 끌레 데 메디아’. 올해 학교 밖 미디어교육을 위한 우수 사례로 선정돼 저널리즘 총회가 수여하는 미디어교육상을 수상했다.


25,000여개 가족협회를 총괄하는 전국가족협회연맹(Uanf)은 부모를 위해 비디오 게임과 관련된 콘퍼런스 및 워크숍,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 등 다양한 행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 미디어와 디지털 이용에 관한 업무를 맡은 올리비에 앙드리유-제라르에 따르면 도 단위 혹은 지역단위 가족협회에서도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마옌느 지역의 가족협회는 부모들끼리 디지털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부모를 위한 카페(Café des parents)’를 마련했다. 카페를 통해 부모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관련 사안에 대해 서로 긴밀히 협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남부 오드 지역의 가족협회는 고등학생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웹과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다양한 활동을 가르쳐주는 소와이용 넷 쉬르 르넷이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교육도 동시에 제공하는데, 지난해에는 어머니의 날을 위한 축하 카드를 만들면서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문제를 함께 다뤘다.


마지막으로 <라 파미으 투테크랑>은 정보의 진위를 어떻게 확인하며 신뢰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저널리즘 콘텐츠와 홍보성 기사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정보원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2016515세 퀘벡 소년인 윌리엄 고드리가 고대 마야 도시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사례로 들면서, 이 기사의 정보 확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신뢰할 만한 정보원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또한, 홍보성 기사와 뉴스 기사의 구별 방법을 위해 문화 전문지 <레 쟁록큅티블(Les Inrockuptibles)>에 실린 비디오 게임 테스트 관련 기사를 통해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2016916일 페이스북에 실려 수만 번 공유된 적이 있는 프랑스 국경 지역 칼레의 묘지에서 이민자들이 소풍을 즐겼다는 게시물에 근거 자료로 제시된 이미지의 사실 여부 확인 방법을 알려주면서 인터넷에 제공된 이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디어, 정보 및 디지털 교육에 도움이 되는 사이트, 정보와 기만적인 선전을 구별하도록 돕는 기관들의 사이트, 청소년과 아동을 위한 미디어, 자녀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의 사이트, 개인 정보의 노출 위험이 없는 안전이 보장된 검색 엔진 등 다양한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민주 시민 위한 필수 교육

이제 프랑스의 미디어교육은 학교 밖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2015년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파리 테러가 있다. 이 테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했는데 특히 혐오 발언이나 선동적인 메시지, 가짜 정보에 대항하기 위해 미디어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이후 학생들을 민주 시민으로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미디어교육이 부각됐고, 디지털 시대에 필수불가결한 교육적, 사회적 쟁점으로 자리하게 됐다.

 

그러나 미디어교육의 확장이 필요한 곳은 비단 프랑스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넘나들며 즉각적으로 정보를 얻는 우리의 청소년들 역시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부모들에게도 이전과는 다른 역할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텔레비전과 컴퓨터, 스마트 기기 사용 시간에 대한 조언


끌레미가 제안하는 건강한 SNS 이용을 위해 자녀들과 공유해야 할 10가지 규칙


안전한 인터넷 사용을 위한 Cnil의 10가지 조언


끌레미가 제안하는 건강한 SNS 이용을 위해 자녀들과 공유해야 할 10가지 규칙


아이들의 동영상 시청에 대한 조언




  1. 에크랑(Ecran)은 ‘스크린’ 혹은 ‘화면’이라는 의미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의 화면 역시 ‘에크랑’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라 파미으 투테크랑’은 ‘동영상 매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가족’으로 번역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이 가이드북은 2016년 11월과 12월 두 달에 걸쳐 끌레미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2,038명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자녀가 정보를 습득하도록 어떻게 가르치는가? 자녀의 SNS 이용에 대해 어떻게 조언하는가? 자녀의 디지털 기기나 동영상 매체 이용 시간을 어떻게 제어하는가?, 폭력적인 이미지로부터 자녀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나? 부모로서 어떤 방식으로 자녀들의 미디어 이용에 관여하고 있나? 아울러 설문 조사 결과, 학부모들 중 78%가 학교 내 미디어교육 수업을 희망했고, 이들 중 83%가 공적 기관이 인터넷의 위험성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문으로]